|홍어|
콘드로이틴이 들어 있는 톡 쏘고 뻥 뚫리는 생선
전라도 지방의 제사상에는 반드시 홍어(洪魚)가 올라옵니다. 잔치에도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것이 없다며 타박을 받는다고 하는데, 특히 전남 서남해안 지방에서는 삭힌 홍어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홍어를 발효시키는 항아리 크기를 보면 그 집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홍어는 옛날부터 많이 먹어온 생선일까?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대왕에게 진상되던 귀한 생선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먹어왔지만 아무래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먹었지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 선생의 《성호사설》에는 홍어 꼬리를 나무에 꽂아두면 독성 때문에 그 나무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어부들이 홍어 잡이를 기피하는 것은 홍어 꼬리의 독성 때문인데, 만약 찔리면 상처에 오줌을 바르고 수달 가죽으로 싸매면 해독이 된다고 했지요.
그런데 홍어에 대한 기록은 한의서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흑산도에 귀양을 간 정약전 선생이 저술한 <자산어보>에 분어(魚)라 했고 속명을 홍어(洪魚)라 하여 형태와 생태 등을 소개해놓았습니다. 전북에서는 간재미, 경북에서는 가부리나무가부리, 전남에서는 홍에 고동무치, 함경남도에서는 물개미, 신미도에서는 간쟁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魚)라고도 합니다.
<자산어보>에 나온 홍어
《자산어보》를 저술하는 데는 섬에 살던 장덕순, 즉 창대라는 소년이 물고기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큰 도움이 되었고, 해녀들도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어를 즐기는 방법과 효능이 잘 나와 있지요. 물속에서 움직이는 모양이 흡사 바람에 너울대는 연잎과 같다"고 했는데, 여린 보리순과 함께 끓인 홍어앳국을 먹으면 "술독이 풀리고 장이 깨끗해지는 효능이 있다"고 평했을 정도이니 그 맛과 효능을 짐작할 만합니다.
홍어탕은 장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주독을 해독시켜 숙취를 해소하는 데 좋습니다. 판소리, 즉 남도창을 하는 소리꾼들이 가래를 삭여준다고 하여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또 뱀에 물렸을 때 홍어 껍질을 붙이면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홍어와 가오리의 차이는?
홍어와 가오리는 사촌지간이지요.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는데 길이가 150cm 정도이고 몸은 마름모꼴로 폭이 넓으며, 머리는 작고 주둥이는 짧으나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눈은 튀어나와 있으며, 눈의 안쪽 가장자리를 따라 5개 정도의 작은 가시가 나 있습니다.
홍어는 산란기인 겨울에서 이른 봄이 제철로, 이른 봄에 나는 보리싹과 홍어 내장을 넣어 홍어앳국을 끓이기도 하며, 회·구이·찜·포 등으로 먹기도 합니다. 홍어국은 소변색이 혼탁한 남성이나 소변을 볼 때 요도가 아프고 이물질이 나오는 사람이 먹으면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찬 성질의 홍어는 특히 몸에 열이 많은 사람들이 여름을 날 때 먹으면 좋습니다.
홍어의 3가지 맛은 오돌오돌하며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코, 잔뼈가 잘근잘근 씹히는 날개 그리고 꼬리를 꼽는다고 합니다.
홍어의 영양 성분
홍어의 먹이는 꽃게·돔·광어·우럭·멸치·조기·오징어류·새우류·게류·갯가재류 등입니다. 그러므로 100g당 단백질 함유량이 약 19g 정도 들어 있는 고단백 식품이고, 지방 함유량은 0.5% 정도이므로 다이어트에 좋습니다. 홍어의 살과 애(간)에는 불포화지방산이 75% 이상으로, 이 중 EPA와 DHA는 35% 이상 함유되어 있습니다.
EPA와 DHA는 관상동맥 질환,혈전증의 유발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고, DHA는 망막 및 뇌 조직의 주요 성분입니다. 홍어에는 타우린(taurine) 등의 유리아미노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중풍·혈관 질환·심부전증의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끈적끈적한 점액은 스태미나 식품, 즉 정력제로도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홍어의 다양한 효능
먼저 관절염이나 류머티즘에 도움이 됩니다. 홍어나 가오리의 연골에는 관절염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콘드로이틴황산(chondroitin sulfate) 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홍어를 요리해 먹거나 삶아서 말린 가루를 먹으면 관절염·신경통에 좋고,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관절 속에는 기계의 윤활유와 같은 고급 단백질인 뮤코다당 단백질인 콘드로이틴(chondroitin)이 들어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이 성분이 줄어들므로 초기에는 뚝뚝 소리가 나다가 점차 결리고 쑤시며 심한 통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관절에 문제가 있을 때는 콘드로이틴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홍어·가오리 외에 콘드로이틴이 들어 있는 식품은?
끓이면 묵처럼 굳어지는 동물성 식품에 많이 들어 있는데, 홍어나 가오리를 비롯하여 상어의 연골과 지느러미달팽이 우렁이 녹용·돼지족발·소의 도가니 등입니다. 콘드로이틴은 피부 미용에도 좋아 주름살이나 기미·주근깨에 효과를 볼 수 있지요. 그 밖에도 홍어는 숙취 해소에 좋고 소화 기능을 도와주며 입맛도 좋게 하고 감기에 걸렸을 때 땀이 나게 하여 나쁜 기운을 몰아내줍니다.
콘드로이틴의 효과
지난 2006년 전남대학교에서 홍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홍어 연골의 주요 성분인 콘드로이틴을 실험쥐에게 투여한 결과, 관절염에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밝혀낸 것입니다. 실험에 따르면, 콘드로이틴을 투여한 실험쥐 100마리에게 관절염을 유발하는 인자를 투입했지만 43마리에서 최대 57마리까지 관절염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관절염을 유발하는 인자를 투입하고 콘드로이틴을 투여하지 않은 실험군에서는 모두 관절염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이들 쥐에게 콘드로이틴을 투여한 뒤 엑스선 판독과 혈중 면역지수를 확인한 결과, 염증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삭힌 홍어를 먹은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그런데 홍어 하면 톡 쏘는 맛이 나도록 삭혀서 먹는 삭힌 홍어가 별미입니다. <자산어보>에 "나주 사람들은 썩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일반에서는 막걸리 안주로 즐겨 먹는다”고 기록했으니 홍어를 삭혀 먹은 역사는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악취를 내뿜는다는 음식 5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삭힌 홍어랍니다.
알싸하게 톡 쏘는 삭힌 홍어는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지독한 냄새와 함께 톡 쏘는 맛에 입이 탁 막히고, 밀려오는 톡 쏘는 냄새에 막힌 콧구멍이 뻥 뚫리게 되지요. 처음에는 그 맛에 기겁을 하지만 뒤이어 오는 묘한 여운 덕분에 다시 먹고 싶어지는 게 바로 삭힌 홍어입니다.
홍어가 삭는 과정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홍어 몸속에 들어 있는 요소(尿素) 때문입니다. 홍어는 바다의 바닥에서 살기에 몸속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데, 요소가 삭는 과정에서 암모니아를 생성시켜 특유의 맛을 내는 것이지요. 요소가 암모니아로 바뀌면서 자연 발효가 이루어진 겁니다.
삭힌 홍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런데 삭힌 홍어는 흑산도에서 시작된 게 아닙니다. 삭힌 홍어 요리는 고려시대 나주 영산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영산포는 영산강 하구인 목포에서 상류로 65km 떨어져 있지만 '홍어의 고향'으로 불립니다. 홍어와 영산포의 인연은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려 말에 왜구의 노략질이 잦아지면서 섬 주민들을 뭍으로 올라와 살도록 한 공도(空島) 정책이 중매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홍어를 잡던 흑산도 일대 주민들이 배를 타고 영산포로 이주했는데, 흑산도는 목포에서 90km 정도 거리에 있어 먼 옛날엔 육지까지 왕복 2~3일은 걸렸다고 합니다. 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잡아 영산포까지 가져오면 자연히 발효가 되어 있었는데, 갓 잡은 것보다 맛이 좋을뿐더러 보관성이 좋아 많은 손님을 치르는 잔치 음식에 적합했던 것이지요.
삭힌 홍어는 생홍어에 비해 어떤 효능이 있을까?
삭힌 홍어도 생홍어와 효능은 같습니다. 그런데 생홍어는 pH 6.5의 산성이지만, 삭힌 홍어는 pH 9의 강알칼리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위산을 중화시켜 위염을 억제하고, 살균 작용이 있어 유해 세균 증식을 억제해 식중독을 막아주는 효능도 생깁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잘 익은 홍어가 있는 잔칫상에는 식중독이 없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홍탁삼합은 음식 궁합 면에서 맞을까?
홍탁삼합(洪濁三合)은 묵은지에 삭힌 홍어와 비계가 붙은 삶은 돼지고기를 얹어 한입에 먹고 탁주를 마시는 것인데, 만약 궁합이 맞지 않았다면 벌써 없어졌겠지요. 시큼한 묵은지와 홍어의 톡 쏘는 맛이 조화되고, 입안 가득히 퍼지는 암모니아의 톡 쏘는 자극을 막걸리의 단백질과 유기산이 중화시켜주며, 차가운 성질의 홍어와 따뜻한 성질의 막걸리가 궁합이 맞으므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과학적인 조합입니다.
그런데 홍어는 바다의 밑바닥에 살기에 차가운 성질이지만 삭힌 홍어는 발효가 되면서 차가운 성질이 많이 줄어듭니다. 서늘한 성질의 배추와 무를 김치로 담가 익어도 이와 마찬가지로 서늘한 성질이 없어집니다.
홍탁삼합은 소화가 잘되는 음식 조합입니다. 돼지고기 외에는 모두 발효 식품으로서 차가운 성질이 없어져 속이 냉한 사람이 먹어도 소화가 잘됩니다. 게다가 막걸리에는 효모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소화효소의 작용을 돕고,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 있어 대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주므로 변비를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홍탁삼합은 생선·육류·채소·곡식을 한꺼번에 먹는 종합 식품입니다. 필자는 여기에 역시 발효 식품인 된장을 곁들여 먹습니다. 만약 파인애플까지 넣으면 과일까지 갖춘 완전 종합 식품이 될 것 같습니다.
홍어의 암수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산어보》에 “암컷이 낚싯바늘을 물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함께 낚싯줄에 끌려 올라오는 예가 있다.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색을 밝히다 죽는 셈이니, 이는 음(淫)을 탐하는 자에게 본보기가 될 만하다”고 했습니다. 암컷은 식탐으로 낚시에 걸리고 그 암컷을 색(色)하다 교미하는 상태로 수놈까지 끌려 올라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홍어를 해음어(海淫魚), 즉 음탕한 고기라고 썼습니다. “수컷에는 흰 칼 모양의 성기가 있고 그 밑으로 알주머니가 있다. 2개의 날개에는 가느다란 가시가 있는데 암컷과 교미할 때는 그 가시로 교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컷 상어의 성기도 배 뒷부분에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 홍어 수놈의 성기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홍어와 상어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바다 밑바닥에 살며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것도 같고, 요소와 콘드로이틴도 들어 있지요. 한편, 홍어의 맛있는 부위는 애, 즉 간이 제일이고 코 날개·꼬리·살 부위로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하니, 생식기는 맛이 별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절에 좋은 콘드로이틴이 생식기와 코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니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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